직업사례 ② 김기수 | 서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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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사례 ② 김기수 | 서각작가

노태형 0 1496

 

김기수 | 서각작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거창군지회장)

  

서각공예나 미술작업은 장애인들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일부러 심리 치유를 위해 미술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는 서각을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으니까요.”

 

서각을 통해 장애의 트라우마를 이겨냈어요

상백(上栢) 김기수. 그는 10년이 넘게 서각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 예술가이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서각(書刻)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돌 등에 새기는 전통예술이다. 공공건물이나 사찰에 가면 목판이나 돌 조형물에 새긴 상징적인 글자를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서각을 이용한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서각을 시작하게 된 단초가 되었는지 모를 장애사고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오토바이 사고였는데 척수만 다친 것이 아니라 손이 부러지고, 폐에 피가 가득 찼던 대형사고였다.

중환자실에만 한 달 정도 있었다. 대개 사고로 장애를 겪고 나면 현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막연하게 걸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시간을 많이 지체하는데 그는 좀 달랐다. 4개월 정도 병원 생활을 하면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 이번 생에는 안 되는 거구나!’ 감이 왔다. 안타까운 부모님은 좀 더 병원에서 경과를 지켜보기를 원했지만 그는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했기에 미련 없이 병원을 나왔다.

 

취업, 두 번의 실직

그런데 막상 퇴원을 하니까 눈물만 흐르고 아무도 만나기 싫더라고요. 누가 뭐래서가 아니라 제 자신이 환경의 변화를 감당 못한 거죠. 2년 정도는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TV를 보는데 장애인이 손으로 운전하는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핸드컨트롤러를 설치하여 장애인이 직접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 차량을 직접 운전할 수 있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취업을 알아보았다.

처음에는 경남 의령 쪽에 있는 식품회사에 생산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첫 직장은 문을 닫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조업체의 가장 말단 하청업체였는데 회사 상황이 안 좋으니까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편법으로 장애인을 고용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용인 수지 쪽으로 옮겨서 또 생산직으로 3년간 근무를 했다. 그러나 그 회사 역시 경영이 불안정해서 몇 달씩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부모님 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 2008. 그때부터 서각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각을 하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라면서 팽이나 잣을 손으로 깎아서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고향 함안군에서 전통 서각의 대가를 만났는데 그분이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인이었어요. 일요일 빼고는 매일 아침 8시쯤 올라가서 밤 8시까지 꼬박 12시간을 3년 정도 배웠습니다.”

 

우연히 접한 서각의 세계

서각은 전통서각과 현대서각으로 나뉜다. 김기수 작가는 전통서각 분야이고 그 중에서도 주로 목재를 이용한 작품을 만든다. 전통서각에서는 따로 화려하게 색칠을 하는 과정이 없어서 나무 자체의 무늬 결이 좋고, 자연적 색깔이 진한 것을 선호한다. 은행나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그 외 느티나무, 가죽나무, 더러는 수입 목재도 이용한다.

칼로 나무를 빚어내는 서각 과정은 마치 수도자의 수련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숭고하면서도 경건하다. 먼저 채본이라는 과정이 있다. 한지에 원하는 글을 붓으로 쓴 뒤 물기가 마르면 나무 위에 붙여 그 위에 글씨를 조각하고, 토분과 안료 등으로 마무리 작업을 한다. 작품에 따라 열흘에서 많게는 몇 개월씩도 걸린다. 칼과 끌, 망치 등을 사용해 글씨나 그림의 특징을 섬세하게 살려야 하기 때문에 작업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은 손끝으로 힘을 모으다 보면 관절에 무리도 가고 어깨가 더 아플 수 있어서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 한다. 그 역시 칼이 살을 뚫고 들어가 근육이 보일 정도로 상해를 입은 적도 있고, 힘이 들 때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마음이 편했다. 서각을 하면서 사람들이 왜 미술을 심리치료로 활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김기수 작가는 예술을 업으로 하는 직업이 풍족한 생활을 보장하기는 힘들어도 과거에 겪었던 트라우마나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는 치유의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한 해 평균 7~8개의 작품 출품

나무마다 특유의 향기가 있어요. 서각에서 많이 사용하는 은행나무는 배변 냄새 같은 게 나거든요. 자연의 냄새지요(웃음). 칼과 나무가 마찰할 때 삭삭깎이는 소리가 나는데 작업이 숙달될수록 그 소리가 부드럽고 매끈해지는데 저는 그 소리가 참 좋아요.”

최치원기념관에 가면 그의 첫 작품인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뒤로 매년 그가 가입되어 있는 미술단체에 평균 7~8개정도의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언제나 한 작품이 끝나면 만족감 보다는 미흡한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김기수 작가에게 서각의 대가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거창군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김기수 작가의 배움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다. 최근에는 지회에서 운영하는 한지공예 과정에 등록하여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있고, 그에 앞서 한국국제대학교에서 늦깎이로 입학하여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벌려놓은 만큼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지 못해 아쉽다는 김기수 작가의 하루는 13역을 소화해 내기 위해 오늘도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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