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운명
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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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19:28
중도장애인은 누구나 운명이나 팔자에 대한 의문이 많습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여러 생각을 붙들고 샅바싸움을 하지만 여전히 안개속이고 하루 해가 짧습니다.
속된 말로 날아다니던 과거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운명이나 팔자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자주 떠오릅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흐름들 그러나 때로는 분명히 내가 만들어온 결과로 보이는 순간들 그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억울하고 답답합니다.
계절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습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며 낙엽이 지고 혹독한 추위가 찾아오듯 인생도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계절에따라 홍수나 가뭄이 있고 때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날벼락은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또 어떤 이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조금 살아본 제가 내린 결론은 인생도 치킨처럼 반반이 맛있습니다.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일도 있고 내 선택과 책임이 불러온 결과도 있습니다.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에게 산은 놀이터였고 일터였습니다. 나뭇짐을 지고 길도 없는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건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도시에서 사람들이 운동이나 힐링을 위해 산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고비에서 저를 살린 건 산이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잘 풀리지 않고 곁에 있던 인연들마저 하나둘씩 멀어져 가고 일어서면 넘어지고 일어서면 또 넘어지는 과정 속에서 자존감은 지하 깊숙이 가라앉았습니다.
지하 1층이 아니라 지하 2층 3층까지 내려앉는 듯한 절망 속에서 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때 선택한 것이 등산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적에는 일터였던 산이 이번에는 저를 살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산에서 단련된 덕분이었는지 맨몸으로 오르는 등산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어서 산에 오르면 몸이 가벼워서 마치 날개라도 단 것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바닥까지 내려앉았던 자존감은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체력이 붙으니 생활도 나아졌고 삶의 형편까지 자연스레 좋아졌습니다. 다시 한번 제 인생에도 화양연화의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사람 마음이 간사한지 산에 익숙해지고 나니 남들이 다니는 등산로는 점점 시시해졌습니다. 뻔하고 예측 가능한 코스는 제게 더 이상 자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등산로를 벗어나 험한 길과 바위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나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길이 제겐 새로운 해방구였습니다.
감춰져 있던 잘난 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는 서서히 위험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줄도 없이 맨몸으로 타는 릿지(바위 능선)는 아차 하는 순간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순간의 짜릿함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두 번이나 사람을 구했습니다. 첫 번째는 바위에서 미끄러지는 여자 후배를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달려가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충격 때문에 후배는 양쪽 발목이 부러졌고 저도 여기저기 까지고 다쳤습니다.
그 순간의 비명과 사람이 굴러내리는 소리 그리고 땀에 젖은 손바닥의 감촉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두 번째는 공룡능선보다 열 배는 위험한 설악산 달마봉 비탐방 코스에서입니다.
등산은 언제나 소풍처럼 들떠 있습니다. 특히 남들이 가지 못하는 비탐방 코스에 모였을 때는 그 들뜸이 더합니다. 저는 아니지만 일부는 점심때 반주라도 곁들였는지 가벼운 흥분이 맴돌았습니다.
그런 탓인지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일행 몇명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위험한 바위로 향했습니다. 릿지를 해본 사람은 알고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돌아 오지도 못하는 코스가 있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 코스를 직감한 세명은 미련없이 돌아섰지만 저보다 열 살은 많은 형님은 길도 없는 바위를 건너가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인생도 그렇지만 각자도생하는 비탐방 등산로에서는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더구나 일몰 전에 하산해야 하는 깊고 큰산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위험을 직감하고 돌아나온 일행과 같이 아무 생각없이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일행중 한명이 안보였습니다.
당연히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한 한분이 보이지 않아서 밧줄을 챙겨서 달려가 보니 바위에 붙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사색이 된 낙오자를 발견한 저는 밧줄을 던져서 허리에 묶으라고 소리쳤지만 당황했는지 손으로만 잡으려고 하는걸 목청껏 외치고 달래서 허리에 묶게 했습니다.
허리에 밧줄은 묶었지만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스스로의 힘밖에 없어서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래로 추락하면서 기절했습니다.
하지만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어서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고 다행히 약간의 찰과상만 입고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조차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 죽을 뻔한 동료를 보고도 여전히 위험한 산행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때 저는 스스로를 운명에 맡긴 듯했습니다. 살아남으면 운명 덕분이고 죽으면 그 또한 운명이라며 무책임하게 합리화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와서 구구절절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운명이란 이름에 기대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고백하고 싶고 이렇게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서입니다.
삶은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날벼락을 맞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기적처럼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운명을 반쯤은 믿고 반쯤은 의심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살아남은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힘겨운 삶을 버티고 계신 분들께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만해서 다행이다.” 살아 있음이 곧 희망이고 오늘을 견뎌낸 것이 바로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고 때로는 운명이 우리를 시험하듯 흔들어대지만 결국은 그 모든 과정을 지나온 우리가 증거고 기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여름 언덕 끝에서 바라보는 가을은 불편한 육체와 다르게 단풍이 물들듯 울긋불긋 아름답고 예쁘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날아다니던 과거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운명이나 팔자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자주 떠오릅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흐름들 그러나 때로는 분명히 내가 만들어온 결과로 보이는 순간들 그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억울하고 답답합니다.
계절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습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며 낙엽이 지고 혹독한 추위가 찾아오듯 인생도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계절에따라 홍수나 가뭄이 있고 때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날벼락은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또 어떤 이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조금 살아본 제가 내린 결론은 인생도 치킨처럼 반반이 맛있습니다.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일도 있고 내 선택과 책임이 불러온 결과도 있습니다.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에게 산은 놀이터였고 일터였습니다. 나뭇짐을 지고 길도 없는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건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도시에서 사람들이 운동이나 힐링을 위해 산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고비에서 저를 살린 건 산이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잘 풀리지 않고 곁에 있던 인연들마저 하나둘씩 멀어져 가고 일어서면 넘어지고 일어서면 또 넘어지는 과정 속에서 자존감은 지하 깊숙이 가라앉았습니다.
지하 1층이 아니라 지하 2층 3층까지 내려앉는 듯한 절망 속에서 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때 선택한 것이 등산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적에는 일터였던 산이 이번에는 저를 살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산에서 단련된 덕분이었는지 맨몸으로 오르는 등산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어서 산에 오르면 몸이 가벼워서 마치 날개라도 단 것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바닥까지 내려앉았던 자존감은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체력이 붙으니 생활도 나아졌고 삶의 형편까지 자연스레 좋아졌습니다. 다시 한번 제 인생에도 화양연화의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사람 마음이 간사한지 산에 익숙해지고 나니 남들이 다니는 등산로는 점점 시시해졌습니다. 뻔하고 예측 가능한 코스는 제게 더 이상 자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등산로를 벗어나 험한 길과 바위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나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길이 제겐 새로운 해방구였습니다.
감춰져 있던 잘난 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는 서서히 위험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줄도 없이 맨몸으로 타는 릿지(바위 능선)는 아차 하는 순간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순간의 짜릿함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두 번이나 사람을 구했습니다. 첫 번째는 바위에서 미끄러지는 여자 후배를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달려가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충격 때문에 후배는 양쪽 발목이 부러졌고 저도 여기저기 까지고 다쳤습니다.
그 순간의 비명과 사람이 굴러내리는 소리 그리고 땀에 젖은 손바닥의 감촉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두 번째는 공룡능선보다 열 배는 위험한 설악산 달마봉 비탐방 코스에서입니다.
등산은 언제나 소풍처럼 들떠 있습니다. 특히 남들이 가지 못하는 비탐방 코스에 모였을 때는 그 들뜸이 더합니다. 저는 아니지만 일부는 점심때 반주라도 곁들였는지 가벼운 흥분이 맴돌았습니다.
그런 탓인지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일행 몇명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위험한 바위로 향했습니다. 릿지를 해본 사람은 알고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돌아 오지도 못하는 코스가 있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 코스를 직감한 세명은 미련없이 돌아섰지만 저보다 열 살은 많은 형님은 길도 없는 바위를 건너가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인생도 그렇지만 각자도생하는 비탐방 등산로에서는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더구나 일몰 전에 하산해야 하는 깊고 큰산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위험을 직감하고 돌아나온 일행과 같이 아무 생각없이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일행중 한명이 안보였습니다.
당연히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한 한분이 보이지 않아서 밧줄을 챙겨서 달려가 보니 바위에 붙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사색이 된 낙오자를 발견한 저는 밧줄을 던져서 허리에 묶으라고 소리쳤지만 당황했는지 손으로만 잡으려고 하는걸 목청껏 외치고 달래서 허리에 묶게 했습니다.
허리에 밧줄은 묶었지만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스스로의 힘밖에 없어서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래로 추락하면서 기절했습니다.
하지만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어서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고 다행히 약간의 찰과상만 입고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조차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 죽을 뻔한 동료를 보고도 여전히 위험한 산행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때 저는 스스로를 운명에 맡긴 듯했습니다. 살아남으면 운명 덕분이고 죽으면 그 또한 운명이라며 무책임하게 합리화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와서 구구절절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운명이란 이름에 기대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고백하고 싶고 이렇게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서입니다.
삶은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날벼락을 맞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기적처럼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운명을 반쯤은 믿고 반쯤은 의심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살아남은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힘겨운 삶을 버티고 계신 분들께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만해서 다행이다.” 살아 있음이 곧 희망이고 오늘을 견뎌낸 것이 바로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고 때로는 운명이 우리를 시험하듯 흔들어대지만 결국은 그 모든 과정을 지나온 우리가 증거고 기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여름 언덕 끝에서 바라보는 가을은 불편한 육체와 다르게 단풍이 물들듯 울긋불긋 아름답고 예쁘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