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느끼는 차별
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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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8 18:08
중도장애인에게 차별은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섦입니다. 장애를 갖기 전에는 불편함이나 답답함을 겪더라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상하거나 상황이 꼬였다는 정도였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나를 배제하거나 거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이후에는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그저 ‘불편하다’고 넘겼던 감정이 이제는 ‘혹시 차별이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번집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어떤 말이나 태도 속에 숨어 있는 차별의 그림자를 예민하게 감지하게 됩니다.
차별이라는 단어를 인식하고 허둥되는 마음 때문인지 장애인이 된 후에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순간순간이 예민한 시험지가 되고 맙니다.
물론 모든 불편과 손해가 항상 차별은 아닙니다. 제 감정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주관적 기분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에서 부정할 수 없는 차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때 느껴지는 절망은 신체적 불편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몸의 고통보다 더 깊은 마음의 상처는 오랫동안 남아서 일상에 그늘이 됩니다.
다치기 전부터 살았던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이었습니다. 외출을 하려면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고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내려갈수 없어서 창밖을 쳐다보며 답답함을 삼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탈출을 꿈꾸듯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돈만 있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 가면 그만이지만 어려운 형편에 장애인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집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중개 비용이라도 아끼기 위해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 매물을 찾았는데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어려웠습니다.
발로 직접 뛰어 다니며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으니 오로지 인터넷 화면 속 사진과 글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진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불안감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몇 날 며칠을 눈이 빠지도록 화면만 들여다봤습니다.
그렇게 애를 쓰던 중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라 2층 월세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나도 감옥 같은 집을 벗어나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직접 보러 갈 수는 없었기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집 구조와 보증금과 월세가 얼마인지 그리고 주변 환경까지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마음속 기대감이 커져갔습니다.
그러다 문득 마지막으로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생각났습니다. ‘혹시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제가 사지마비 장애인인데, 거주가 가능할까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장애인은 안 됩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 잠시 멈췄지만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명확했습니다. “장애인은 안 된다.”
그 짧은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리고 장애인이 된 후 처음으로 ‘노골적인 차별’을 경험했습니다. 말문이 막혔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현타’가 왔습니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모멸감이었습니다. 마치 외모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한 듯한 황당함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차별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가 한순간에 공허한 말로 변해버렸습니다.
2025년 지금 이 시대에도 이런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저를 깊은 슬픔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저를 부축해 주는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렇습니다. 저를 꺽을 수는 있지만 포기와 도전은 저의 선택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저의 오기를 발동시켰습니다. ‘차별조차 내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장애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다른 집을 구할 수 있었고 감옥 같은 4층 집을 벗어나 조금은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남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괜히 장애인이라고 말했나! 그냥 숨겼으면 됐을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제는 제 몸이 아니라 장애인을 거부하는 사회적 시선과 태도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씁쓸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는 장애인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그 차별의 칼날은 신체의 불편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깊게 마음을 찌릅니다.
저는 소원합니다. 애완견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장애인이 아니라 단지 ‘조금 다른 존재’로 인정받는 사회적 인식과 차별이 아닌 차이로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차별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지만 저는 오늘도 버텨내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되기를 그래서 또 다른 누군가가 저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이후에는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그저 ‘불편하다’고 넘겼던 감정이 이제는 ‘혹시 차별이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번집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어떤 말이나 태도 속에 숨어 있는 차별의 그림자를 예민하게 감지하게 됩니다.
차별이라는 단어를 인식하고 허둥되는 마음 때문인지 장애인이 된 후에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순간순간이 예민한 시험지가 되고 맙니다.
물론 모든 불편과 손해가 항상 차별은 아닙니다. 제 감정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주관적 기분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에서 부정할 수 없는 차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때 느껴지는 절망은 신체적 불편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몸의 고통보다 더 깊은 마음의 상처는 오랫동안 남아서 일상에 그늘이 됩니다.
다치기 전부터 살았던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이었습니다. 외출을 하려면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고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내려갈수 없어서 창밖을 쳐다보며 답답함을 삼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탈출을 꿈꾸듯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돈만 있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 가면 그만이지만 어려운 형편에 장애인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집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중개 비용이라도 아끼기 위해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 매물을 찾았는데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어려웠습니다.
발로 직접 뛰어 다니며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으니 오로지 인터넷 화면 속 사진과 글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진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불안감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몇 날 며칠을 눈이 빠지도록 화면만 들여다봤습니다.
그렇게 애를 쓰던 중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라 2층 월세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나도 감옥 같은 집을 벗어나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직접 보러 갈 수는 없었기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집 구조와 보증금과 월세가 얼마인지 그리고 주변 환경까지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마음속 기대감이 커져갔습니다.
그러다 문득 마지막으로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생각났습니다. ‘혹시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제가 사지마비 장애인인데, 거주가 가능할까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장애인은 안 됩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 잠시 멈췄지만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명확했습니다. “장애인은 안 된다.”
그 짧은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리고 장애인이 된 후 처음으로 ‘노골적인 차별’을 경험했습니다. 말문이 막혔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현타’가 왔습니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모멸감이었습니다. 마치 외모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한 듯한 황당함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차별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가 한순간에 공허한 말로 변해버렸습니다.
2025년 지금 이 시대에도 이런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저를 깊은 슬픔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저를 부축해 주는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렇습니다. 저를 꺽을 수는 있지만 포기와 도전은 저의 선택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저의 오기를 발동시켰습니다. ‘차별조차 내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장애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다른 집을 구할 수 있었고 감옥 같은 4층 집을 벗어나 조금은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남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괜히 장애인이라고 말했나! 그냥 숨겼으면 됐을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제는 제 몸이 아니라 장애인을 거부하는 사회적 시선과 태도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씁쓸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는 장애인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그 차별의 칼날은 신체의 불편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깊게 마음을 찌릅니다.
저는 소원합니다. 애완견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장애인이 아니라 단지 ‘조금 다른 존재’로 인정받는 사회적 인식과 차별이 아닌 차이로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차별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지만 저는 오늘도 버텨내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되기를 그래서 또 다른 누군가가 저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