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순간에 비어 있는 돌봄, 지역사회가 채워야 합니다”
“필요한 순간에 비어 있는 돌봄, 지역사회가 채워야 합니다”
1. 지역사회 생활을 흔드는 돌봄공백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은 단순히 집 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병원에 가고, 사람을 만나고, 지역사회 안에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상 전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에게 이 일상은 돌봄과 지원이 끊기는 순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활동지원사가 갑자기 오지 못하는 경우, 가족 보호자가 병원에 입원하거나 부재한 경우,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필요한 지원이 바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 야간이나 휴일에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중증장애인의 생활은 한순간에 멈출 수 있다.
특히 척수장애인, 뇌병변장애인, 중증 지체장애인과 같이 일상생활 전반에서 타인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봄공백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의 일정이 밀리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 전체가 흔들리는 문제이다.
2. 중증장애인에게 돌봄공백은 생활과 건강의 공백이다
돌봄공백은 식사 한 끼를 거르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체위변경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욕창으로 이어질 수 있고, 배뇨와 배변 지원이 지연되면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동 지원이 끊기면 병원 진료나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할 사람이 없으면 당사자와 가족 모두 큰 불안에 놓이게 된다.
중증장애인의 돌봄은 일반적인 일상 지원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다. 척수장애인의 경우 체위변경, 욕창 예방, 배뇨·배변 관리, 휠체어 이동, 낙상 예방, 호흡과 체온 조절 등 세심한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뇌병변장애인 역시 의사소통, 식사, 이동, 경직 관리, 응급상황 대응 등에서 개별적인 이해와 경험이 요구된다.
단순히 누군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돌봄의 영역이 존재한다. 중증장애인에게 돌봄공백은 생활의 공백이자 건강의 공백이며, 나아가 지역사회 삶의 공백이 된다.
3. 제도 사이의 빈틈, 현실 대응의 한계
현재 우리 사회에는 활동지원서비스, 방문간호, 가족돌봄, 복지서비스 등 다양한 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와 제도 사이의 빈틈, 긴급상황에 대응하는 체계의 부족, 야간과 휴일의 공백, 중증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 인력 부족이 함께 작용하면서 실제 현장에서는 대응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활동지원 시간이 있어도 필요한 시간대에 인력이 연결되지 않을 수 있고,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디에 연락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가족이 대부분의 부담을 떠안고 있다가 가족 돌봄이 무너지는 순간, 당사자의 생활 전체가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이는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만 볼 수 없는 문제이다. 가족의 헌신만으로, 당사자의 인내만으로, 주변의 선의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돌봄공백이 가져오는 위험이 너무 크다. 돌봄공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마주해야 할 공공의 과제이다.
4. 긴급돌봄체계는 삶을 이어주는 안전망이다
중증장애인의 돌봄공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긴급돌봄체계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긴급돌봄체계는 단순히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거나 일시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살고 있는 집과 지역사회 안에서 생활이 끊기지 않도록 필요한 지원을 빠르게 연결하고, 상황에 맞는 인력을 조정하며, 가족과 당사자의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체계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긴급상황을 접수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전담 창구가 필요하다. 당사자와 가족이 위기 상황에서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지 명확해야 하며, 연락 이후 실제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상담에 그치지 않고 활동지원기관, 지자체, 병원, 장애인단체, 지역 복지기관 등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연결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중증장애인의 신체적 특성과 생활환경을 이해하는 전문 인력의 확보가 중요하다. 돌봄공백은 아무 인력이나 급하게 투입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척수장애와 뇌병변장애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동·체위변경·배뇨·배변·응급상황 대응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진 인력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안에 이러한 경험을 가진 인력풀이 구축되어야 돌봄공백에 보다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다.
5.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돌봄으로
무엇보다 긴급돌봄체계는 당사자의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시설이나 병원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집과 익숙한 환경에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긴급돌봄은 당사자를 다른 곳으로 분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현재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안전망이어야 한다. 당사자가 살아온 공간, 익숙한 관계, 자신이 선택한 생활이 갑작스러운 돌봄공백으로 끊기지 않도록 돕는 것이 긴급돌봄체계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돌봄공백은 장애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한 가족만의 책임도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제도적 기반과 예산을 마련하고, 활동지원기관은 현장 지원체계를 강화하며, 의료기관은 퇴원 이후 지역사회 연계에 협력해야 한다. 장애인단체는 당사자의 목소리와 실제 생활 경험을 전달하고, 지역 복지기관은 필요한 자원을 연결해야 한다.
각 기관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사회 안전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 누가 먼저 움직이고, 어디서 지원을 연결하며, 어떤 인력이 현장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돌봄공백은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함께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과제가 된다.
6. 필요한 순간에 삶이 멈추지 않도록
중증장애인의 돌봄공백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공백을 개인의 운이나 가족의 희생에 맡겨서는 안 된다. 이제는 지역사회가 함께 준비해야 한다. 필요한 순간에 비어 있는 돌봄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도 삶을 이어주는 돌봄이 되어야 한다.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는 평상시에만 보장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가장 긴급한 순간에도 그 삶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 돌봄은 단순히 누군가를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오늘의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일이다.
지역사회 긴급돌봄체계는 특별한 누군가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누구나 예기치 못한 위기 앞에 설 수 있고, 누구나 도움 없이는 하루를 이어가기 어려운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중증장애인의 돌봄공백을 메우는 일은 한 사람의 삶을 지키는 일이자,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다.
글 / 이성대(경상남도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
□ 「장애와 사회」는 경남척수장애인협회가 매월 기획하는 정책·시사 칼럼으로,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와 권리옹호,
그리고 지역사회의 변화를 함께 논의하는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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