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사례 ⑧ 류 나 |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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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사례 ⑧ 류 나 |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임

노태형 0 922

 

류 나 |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임 (도봉지사 근무)

  

입사하자마자 가정형편이 어려운 차상위 계층의 사람들한테 본인 부담 의료비를 낮춰주는 일을 했어요. 그 일은 혜택을 주는 업무였으니까 전화상으로 고맙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들었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보람 있었죠.”

 

나도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사람

중학교 때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서 계속 치료를 받는 중이었어요. 열일곱 살 때 심하게 열이 나면서 쇼크로 기절한 것 같았는데 30분 정도 숨이 멈췄다 깨어났대요. 그 후로 이렇게 다리를 못 움직이게 되었어요.”

그날 이후로 눈부신 청춘도, 학업도 순간정지 되었다. 류나씨는 사실 병원치료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평생 못 걷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한다. 단순히 항암치료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빨리 치료를 끝내고 재활치료를 열심히 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왜 깨어났을까, 차라리 그대로 못 깨어났다면 더 좋았을 것을...’

매일 울었고, 매일 절망하였으며, 부모님을 향하여 절규했다. 후천적 장애인들이 겪는 좌절-분노-체념-극복의 과정을 그녀 역시 고통스럽게 걸어왔다.

 

사회복지사의 꿈을 접고 공단 직원으로!

항암치료를 25개월 받고 나니까 친구들은 고등학교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대신 검정고시를 치르고 항암치료 때문에 미루어두었던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학 수능시험에 도전하여 한국성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원래 제 꿈은 의료사회복지사였어요. 그런데 실습과정에 뽑혔을 때 휠체어를 타고 수련 과정에 참여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이 길이 아닌가보다 고민하고 있던 차에 국민건강보험공단 공고가 떠서 응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공단에 입사를 한 것은 어머니가 공고를 보고 지원해보라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전에는 오로지 사회복지사에만 꽂혀서 대학 마치고 바로 대학원을 들어갔고 계속 그쪽 분야만 기웃거렸다는 류나씨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하는 의료사회복지사에게 휠체어가 제약이 된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닫고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류나씨는 2018년 하반기 시험에 합격하여 3주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2019년부터 출근을 시작했으니 근무한지 1년이 채 안된 따끈따끈한 새내기 사원이다. 첫 출근 때부터 주변에서는 출퇴근을 많이 염려해주었다.

특히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으면 어떻게 출근하느냐고 걱정을 많이 해주는데 사실 출퇴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며, 공단의 분위기가 좋아서 조직에 쉽게 적응했다. 오히려 너무 많은 배려를 해줘서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허둥지둥 진땀은 흘려도 즐겁다!

입사하자마자 가정형편이 어려운 차상위 계층의 본인 부담 의료비를 낮춰주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은 혜택을 주는 업무였으니까 환자를 직접 만나지는 않더라도 전화상으로 고맙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들었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고 보람 있었죠.”

7월에 인사이동이 있으면서 류나씨는 직장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정산하는 업무 부서로 바뀌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업무를 한 가지씩 조심스럽게 맡기던 팀장님도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한꺼번에 일을 주신다. 경험이 부족하여 잘 모르는 일도 많고 그럴 때마다 허둥지둥하면서 진땀을 빼지만 하나씩 배워가는 이 생활이 즐겁다.

출퇴근도 적응이 되었고, 조직 내 사람들과도 잘 융화하고 있지만 체력적인 요인은 류나씨에게 여전히 핸디캡이다. 고등학교 때 쓰러지고 나서 바로 재활치료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항암치료를 받느라고 적정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류나씨의 척추는 많이 휜 상태이다. 전만증과 측만증이 심하여 지금도 매일 재활치료를 받으러 가야하기 때문에 8시간 근무를 신청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서른한 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하고 싶은 게 많다. 어릴 때 그만두었던 피아노도 다시 배우고 싶고, 기타나 우쿨렐레처럼 특별한 악기 하나쯤은 다루고 싶다. 그러나 알아보니 대부분의 음악학원이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개인레슨을 시도해보았으나 이동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예전 같으면 화도 나고, 속이 상해서 금방 포기했을 테지만 이제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방법을 찾다 보면 언젠가 길이 열릴 것이고, 그래도 답이 안 나오면 포기는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걱정만 하고 실행에 옮겨보지 않는다면 그 걱정은 의미가 없어요. 일단 부딪쳐야 계속 할지, 그만둘지, 돌아갈지 답이 나오겠지요. 저의 경우 자꾸 도전을 하다 보니 뭐든지 시작할 때의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어요.”

류나씨는 자신의 좌절과 분노를 힘든 내색 안하고 받아주던 부모님과 가족이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며 부모님이 이젠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무언가 주저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분들이 많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뭐든 용기를 내고 함께 도전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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