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사례 ③ 김대섭 | 성북구청 지적관리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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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사례 ③ 김대섭 | 성북구청 지적관리 공무원

노태형 0 875

 

김대섭 | 성북구청 지적관리 공무원 (성북구청 지적과 근무)

 

복직을 위해서 구청 가까이 집을 얻었어요. 휠체어를 밀고 첫 출근을 하는데 떨리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고, 가슴이 울컥하더라고요. 다시 새로운 시작을 했던 그날 아침, 살갗을 스치는 바람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원직장 복귀로 사명감이 생겼어요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안정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김대섭씨에게 인생을 송두리 째 바꿔놓은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여름에 절친한 친구들과 계곡에 물놀이를 갔어요. 수영을 배운지 2개월쯤 되었을 때였고 다이빙까지는 진도가 안 나갔는데 남들이 다이빙하는 걸 보니까 나도 도전해보고 싶더라고요.”

젊은 혈기에 그 정도쯤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한 번을 높이 뛰어보았다. 수영할 때는 맛보지 못한 전율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좀 더 높이 뛰어보았다. 더 짜릿했다. 호기롭게 세 번째 다이빙에 도전했다. 한껏 높이 몸을 날려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신은 말짱하고,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데 몸이 엎드린 채로 물에 둥둥 떠서 흘러갔다.

2009년 여름, 즐겁게 놀다가 일어난 사고로 김대섭씨는 그때까지 남의 일이거나 혹은 드라마 속의 일이라고만 여겼던 장애인이라는 평생의 멍에를 지게 되었다.

 

젊은 날의 호기가 불러온 사고

병원차에 실려 응급실로 수송될 때만 해도 단순 사고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의사가 가족들한테 얘기하는 걸 얼핏 들으니 평생 휠체어에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때도 설마, 거짓말이겠지 했어요.”

격렬한 다이빙을 하면서 경추 골절을 일으켜 경수 6번이 완전히 손상되어 몸이 말을 잘 안 들었다. 처음에는 어라, 왜 안 움직이는 거야?’ 하며 웃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제 누군가에게 평생 짐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자괴감이었다. 평소 굉장한 효자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을 자신이 부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하나부터 형제들한테 자신이 어떤 형태로든 부담을 주게 된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장애의 몸으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직장으로의 복귀를 절박하게 만든 계기가 생겼다. 다시 일을 할 용기는 나지 않고 우선 있는 돈이라도 불려야겠다는 생각에 믿었던 고향 친구한테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는데 사기를 당해 돈을 홀랑 날린 것이다.

 

금전사기가 전화위복이 되었다

, 이제 일을 안 하면 살아갈 방법이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김대섭씨는 그 일이 없었다면 병원에서 오래도록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사기로 인해서 복직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니 지금 생각하면 전화위복이 되어준 셈이라고 말했다.

2003년부터 6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사고 후 2년의 공백기를 보내고 2011년 복직을 했다. 사고 전에는 구청장 수행비서를 지내기도 했고, ‘암행반(내부감찰반)’이라고 해서 감사를 나가는 역동적인 일을 하였지만 복직을 하면서 행정적인 분야로 발령이 났다. 지적과에서 김대섭씨는 건축물대장, 토지대장, 도로명주소 등 지적공부를 정리하는 일을 한다. 주로 손을 쓰는 일이다.

김대섭씨는 지금도 복직하던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그날 아침의 감격을 장애인 체험 수기에 공모하여 상장과 상금까지 받았다고 고백했다.

복직을 위해서 구청 가까이 집을 얻었어요. 휠체어를 밀고 첫 출근을 하는데 떨리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고, 가슴이 울컥하더라고요. 다시 새 출발을 하던 그날 아침은 살갗을 스치는 바람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세금 내는 장애인이 많아지는 사회 기대

직장 복귀 후 처음에는 보조적인 업무만 맡았다. 적응기를 지나면서 차츰 본 업무를 맡기 시작했다. 체력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열심히 했다.

몸에 이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집중했는지 욕창이 생겨서 양쪽 엉덩이에서 달걀 정도 크기의 근육을 도려내는 큰 수술을 했다. 의사가 조금만 늦게 왔으면 뼈에 전이될 뻔 했던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수동휠체어를 못 타게 되었다.

김대섭씨는 아직도 병원에 있는 분들에게 외람되지만 병원 환자복에 갇혀서 살지 말고 빨리 옷을 벗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처지를 비관하다보면 헤어날 수가 없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임에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지인들이 많이 보여요.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죠. 생계가 우선이지만 그 분들도 일을 통해 얻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장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은 받되, 일하면서 세금 내는 장애인이 많아지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날을 당기기위해서라도 장애인들이 공무원에 많이 도전하길 바란다. 장애인이 많이 들어와야 조직이 달라질 테고, 사회를 바꿀 수 있으며, 그로써 더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아름다운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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