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사례 ⑱ 하 철 | 다산도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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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사례 ⑱ 하 철 | 다산도예 대표

노태형 0 1018

 

하 철 | 다산도예 대표

  

도예가나 예술가로서의 삶은 비장애인도 꺼리는 배고프고 고독한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이 일을 좋아한다면, 영혼을 쏟아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포지션을 찾을 수 있으니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보세요.”

 

흙의 매력에 푹 빠진 도예가

그의 고향은 한강 뚝섬이다. 어릴 때 맨발로 한강의 뻘을 밟을 때 발가락 사이로 쭉쭉 삐져나오는 질척한 진흙 느낌을 좋아했다. “흙의 솔직함에 한번 빠지면 그 매력에서 헤어나기 힘들다고 말하는 하철 작가는 흙과 감정을 교류하는 예술가이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들한테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담임선생님께서 제가 찰흙을 가지고 만드는 걸 보면서 나중에 커서도 너는 항상 이런 쪽 일을 해라 하셨거든요. 어릴 때는 누군가 나의 재능을 알아주면 기억에 남잖아요. 그게 선생님이라면 더욱 영향을 미치게 되죠.”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공교롭게도 담임선생님이 미술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제자의 재능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관련 콩쿠르나 명성 있는 대회가 열릴 때마다 정보를 주고 참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선배따라 갔던 기능대회에서 금메달

선생님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상 그토록 가고 싶었던 예술고등학교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을 때 한 차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그 후 찾아온 결핵성 척추염으로 인하여 신경 손상이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현재는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비록 몸은 불편해졌지만 타고난 그의 재능까지 녹슨 것은 아니었다. 곤지암에 있는 성베네딕트 수녀원 직업재활학교를 찾아서 3년 정도 공부하였는데 거기서 알게 된 형이 기능대회를 나가는 것을 보고 그는 도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선배에게 그런데는 왜 나가냐고 물었더니 거기서 인정받으면 상금도 받고 대학도 갈 수 있다고 했어요. 귀가 솔깃하여 저도 출전을 했는데 96년에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 뒤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시작했어요.”

도자기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는 유약 공부를 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대학에서 재료공학과를 지원했다. 수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공학이라니 순진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다.

화학은 그럭저럭 어떻게 해보겠는데 공업수학 이런 분야는 도무지 안 맞더라고요. 다행스럽게도 그 학교에 도예과가 있어서 전과(轉科)를 하게 되었습니다.”

 

진묘수보고 강한 영감을 얻다

학교 창립 이래 공대생이 미대생으로 전환한 최초의 학생이 된 그는 흙 만지는 도술이라는 학교 동아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25년을 도자기와 함께 살았다. 중간에 다른 길로 빠졌던 적도 있지만 결국, 먼 길을 돌아오니 이 길이었다.

결혼하고 처음에는 차도구를 만들었어요. 어느 분야건 마찬가지겠지만 기존 그룹의 텃세가 있잖아요. 천안 쪽에도 차도구협회가 있는데 잘 섞이질 못했죠. 무시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다시는 차도구를 안 만들겠다고 다 때려 부수었어요.”

애들만 좀 가르치면서 그의 표현대로라면 한동안 백수처럼 살았다. 손꼽아보니 그 시간이 7년이나 되었다. 우울증도 깊었고, 심한 슬럼프였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공주박물관에서 진묘수를 보고는 강한 영감을 받았다. ‘진묘수는 중국 고대부터 수호신으로 여기던 상상의 동물이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진묘수를 공주박물관에서는 대표 브랜드로 선정하고 수호신으로 설치해놓았다.

 

정말 좋아한다면 길은 열린다

공주박물관의 진묘수는 몸체는 돌이고 뿔은 쇠로 되어 있다. 하철 작가는 흙으로 진묘수를 빚기 시작했다. 다산도예의 진묘수는 지금 전국의 박물관과 고궁, 공항 한국문화센터 등에 상설 전시되어 언제든 만나볼 수 있다. 그가 또 관심을 갖는 분야는 솟대이다. 전형적인 도자기 솟대가 아니라 지팡이 위 손잡이에다 솟대를 붙여놓은 형상이다. 지팡이 솟대는 그가 장애가 진행되면서 지팡이를 짚고 다녔을 때 모티브를 얻었다. 지팡이와 깡마른 발을 형상화하여 손잡이에다가 솟대를 붙인 것인데 이처럼 스토리가 녹아있는 작품을 하 작가는 좋아한다.

그가 걸어온 길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끝장을 본다는 별명 한다철답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하 작가는 직업으로서 예술가의 삶을 추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예술가의 길은 비장애인들도 꺼리는, 배고프고 고독한 길이라는 걸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작가는 말한다. 정말, 이 일을 좋아한다면, 작업에 영혼을 쏟아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포지션을 찾을 수 있으니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보라고. 열정이 있는 한 길은 열려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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