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사례 ⑬ 윤용석 | 경희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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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사례 ⑬ 윤용석 | 경희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학생

노태형 0 871

 

윤용석 | 경희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학생

  

게임 시장에서 그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기능성게임이다. 기존 재미만을 추구하는 게임과는 달리 기능성게임은 정보전달, 인식 전환, 훈련 등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재미와 효과를 겸비하여 군사 훈련, 재활, 의료, 교육 분야에서 틈새시장을 열어가고 있다.”

 

기능성게임 만드는 게임 기획자 꿈 꿔요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전도유망한 청년, 올해 28살 윤용석씨는 경희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의 예비 졸업생이다. 사고 전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경희대학교에서 지금의 전공을 하기까지 지난 8년간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인생의 희로애락을 체험했다.

2011년 대학 1학년 스무살이었던 그는 불과 한 학기를 다니고 교통사고로 경수 5, 6번을 다쳤다. 아주대학교부터 시작해서 일산 백병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동국사랑병원, 예은병원, 국립재활원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순례했던 병원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스무살의 가을, 겨울을 그렇게 병원에서 보냈다. 처음엔 꼼짝없이 누워만 있다가 조금씩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의사들은 열심히 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대하는 것만큼의 호전은 없었다.

 

사고 후 수능 재도전하여 전공 바꿔

몸이 예전같지 않으니까 현장 실습이 많은 전공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어요. 긴 안목으로 봤을 때도 옳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서 복학을 포기하고 다시 수능에 재도전했습니다.”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그동안 대학입시는 변화가 많았다. 처음 수능을 보았을 때와는 달리 미적분 과목이 필수과목으로 들어가서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다. 첫해는 워밍업으로 시험만 응시하고 다음해 정도 합격을 목표했는데 다행히도 그 해에 합격을 했다. 본인은 운이 좋았던 것이라며 겸손해 하지만 남들은 한 번도 힘들다는 수능인데, 몇 년의 공백기를 뛰어넘어 한 번에 합격한 것을 보면 타고난 머리가 있었던 탓이다.

정원이 40명 정도인 디지털콘텐츠학과는 그 안에서 영상, 애니메이션, 미디어콘텐츠, 게임 등 네 가지로 전공이 세분화되는데 그 중에서 윤용석씨가 선택한 것은 게임이다. 그는 일반 게임분야보다는 기능성게임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국내 게임 시장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국내 업계는 위기감을 많이 느끼는 걸로 알고 있어요. 게임 시장의 상당부분을 이미 중국업체들이 장악하고 있구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하는 게임 기업들조차 신작 출시에 저조한 상황이어서 미래의 틈새시장인 기능성게임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재미와 유익함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콘텐츠

한 학기 휴학을 하고 지금 9학기째라는 윤용석씨가 졸업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도 기능성게임이다. 기능성게임은 교육이나 여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게임을 말한다. 군사훈련, 재활운동, 의료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졸업작품은 장애인식개선을 주제로 제작중이다. ‘유희 제공이라는 게임 본연의 기능과는 거리가 있어서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지만 윤용석씨는 꼭 그렇게 단정할 수만은 없다는 견해이다. 기능성게임으로 국내에서 대히트를 친 닌텐도가 이미 그 사례를 제공한 바 있다.

닌텐도는 처음 국내 시장에 진입했을 때 학습도구로 홍보하여 이미지를 쌓았다. 10여 년 전에 초··고등학생들에게 닌텐도는 로망이었고, 부모들은 자녀들이 무엇인가 약속한 것을 성취했을 때 닌텐도를 사주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닌텐도의 실제 구매를 결정하는 계층은 부모들이었는데 구매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닌텐도가 학습도구, 두뇌개발을 돕는 교육용 게임기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물론, 윤용석씨가 생각하고 있는 기능성게임 분야와 닌텐도의 성공사례를 비유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는 있겠지만 외국계 게임업체가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멀리 미래를 내다본 결정이다.

 

독립 기획자 코지마 히데오가 롤모델

기능성게임이라는게 재미와 유익(학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하는데 그러려면 남들과 같은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게 새로운 기술과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쉼 없이 관심을 가져야 해요.”

게임 개발자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야한다. 학교에서 강의로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방학이나 휴학 시기를 이용하여 관심있는 분야를 찾아서 따로 공부하고 있다. 그가 게임 분야에 롤모델로 생각하는 사람은 일본의 코지마 히데오다.

일본에서 메탈기어 솔리드의 아버지로 알려진 코지마 히데오는 코나미에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면서 승승장구했으나, 많은 업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로부터 토사구팽당했다.

그 뒤, 독자적으로 코지마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여전히 게임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는 코지마 히데오는 서양과 동양, 과거와 미래, 파괴와 개척, 현실과 허구를 융합하는 새로운 놀이를 계속 선보이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쌓아가고 있다.

코지마 히데오처럼 나만의 색깔을 담은 멋진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개척적인 게임기획자가 되고 싶습니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꿈에 근접할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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